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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트로기르 - 동유럽, 발칸여행

6/11 (화)

트로기르는 스플리트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차로 30분~40분 정도 거리에 있다.

3년전 패키지 여행때는 안들려본곳인데...

요즘 일부 패키지여행사에는 포함된듯하다.

한국관광객 2팀이 아침일찍 둘러보며 지나간다.

 

한강 여의도와 비슷하다.

바닷가 섬처럼 생긴곳에 성을 쌓고 옆으로 마을이 만들어진곳....

구시가지의 옛스러움은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등과 비슷하다.

이 동네 햇살이 넘 강하고 덥기때문에 선선한 오전에 돌아보기로하고 일찍왔다.

참고로 주차비가 센편이다.  3시간 주차에 60쿠나,  우리돈 약 10,800원 냈다.

 

 

트로기르

스플리트 근교 여행

Trogir

트로기르는 기원전 3세기경 비스(Vis) 섬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발견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특이하게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는 것이 용이한 곳이었다.

 

트로기르 구시가는 특별한 랜드마크는 없지만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골목을 여유롭게 산책하듯 즐기는 것이 좋다.

골목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과

예쁜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어 구시가를 산책하며

트로기르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펌)

 

 

 

 

 

 

 

성 로브르 대성당

트로기르 대표 랜드마크  

성 로브르 대성당은 이바나 파블라 광장에 자리한 트로기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원래 기독교 교회가 있던 자리가 12세기 사라센의 침입으로 파괴되면서

13세기에 들어서 가톨릭 성당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증축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이 혼합된 양식을 하고 있다.

특히 성당 입구의 아담과 이브의 화려한 조각은 트로기르에서 태어난

라도반(Radovan)이라는 유명한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펌)

 

 

 

 

 

 

 

 

 

 

 

 

 

 

 

 

 

 

 

 

 

카메르렌고 요새  

입장료 : 25쿠나 

13세기 오스만 트루크를 방어할 목적으로 성벽을 세우기 시작해

14세기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 이곳은

프랑스군의 아드리아해 해군기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420년 트로기르는 베네치아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당시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 카메라리우스(Camerarius)’의 이름을 따서

카메르렌고라고 이름 붙여졌다.

 

여름철에는 다양한 공연과 음악회가 열리는 공연장으로도 사용되며,

탑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트로기르 구시가지와 아드리아해의 전경이  아름답다.

 

 

 

카페에서 잠시 쉬어간다.

 

 

 

 

 

 

카메르렌고 요새 내부.

 

 

 

 

 

 

 

 

 

 

 

요새 규모는 작다.

 

 

 

 

 

 

 

 

 

 

 

 

 

 

 

트로기르 시내전경

 

 

 

 

 

 

 

 

 

 

 

 

 

 

 

 

 

 

 

 

숙소로 와서 라면사리 넣은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더운 오후시간은 숙소에서 쉬어간다.

 

발칸쪽을 다니면서 보면 고기값이 저렴함을 새삼 느낀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모두 동일하게 값싸고 질이 좋다.

삼겹살 부위로 어제저녁 수육을 만들어 먹었는데...

쫀득한 식감, 신선함이 확 퍼진다. 

잡냄새 하나없고....한국에선 맛볼수없는 재료에

에소님의 손맛이 더해진 윤기가 반지르르한 수육은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다만 사진이 없어 아쉬울뿐이고...

오늘은 어제 수육고기 남은걸로 한별표 김치찌개를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다. 

 

 

 

 

<스마트폰 사진>

 

 

 

 

 

 

 

 

 

 

 

 

 

 

 

 

성당 입구 아담과 이브의 화려한 조각은 트로기르에서 태어난

라도반(Radovan)이라는 유명한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정 로마 시대의 황제로

후기 로마 제국의 통치 기반을 다진 황제로 평가 받고 있는 인물이다.

 

244년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약간 떨어진 솔린(Solin - 당시 이름은 살로나)에서 태어났다.

공화정을 유지하던 로마 제국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즉위로 제정 시대에 접어들게 되는데,

3세기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힘이 로마 제국 전역에 미치지 못하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극도의 혼란을 겪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즉위하기 전인 235년부터 284년까지 49년간

18명이 황제 자리에 오를 정도로 어지러운 상태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즉위한 직후

넓은 로마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제도로 4두 정치를 도입했다.

4두 정치는 동방 정제와 부제, 서방 정제와 부제 4명이 지역을 분할해

군대를 통솔하고 외부의 침략을 막아 내는 제도로,

혈통에 의존하지 않고 뛰어난 군사 지휘 능력을 지닌 사람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함으로써

후계자 문제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할 통치는 군사적인 분야에만 국한된 것으로

내정이나 외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직접 챙겼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관직 제도나 조세 제도의 개편 등

다양한 개혁 제도를 도입해 제국의 기틀을 더욱 튼튼하게 닦았다.

 

그러나 기독교를 탄압했다는 측면에서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았던 황제이기도 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을 점진적으로 황제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중앙 집권 국가로 만들려고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황제를 신성화하려고 했다.

 

이미 많은 세력을 확보하고 있던 기독교는 이러한 정책에 반하는 대표적인 세력이었기 때문에

박해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직접 통치하던 이집트에서는 극심한 박해가 이루어졌다.

이후 다른 황제들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도 지속됐는데,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끝을 맺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죽음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황제의 자리를 후계자에게 내어 준 유일무이한 황제이다.

 

복잡한 정치와 권력 다툼을 피해 자신의 고향이었던 스플리트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하고 이곳에 궁전을 지었으며,

자신과 함께 4두 정치를 펼치던 서방정제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물론,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퇴위 이후 심각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내와 딸이 살해되는 등 비극을 겪었다.(펌)

 

 

< 야간 스플리트 >

저녁은 된장국, 김치전, 김치 그리고 밥....

넘 많이 먹어서 소화시키러 스플리트의 밤거리를 약 2시간 정도 산책하러 나간다.

 

 

 

 

일몰시간이 저녁 8시 30분 정도여서...아직  해가 살짝 남아있다.

 

 

 

크로아티아는 환전을 해야한다.

이나라돈 1쿠나는 180원정도...1유로는 7.42쿠나 정도하는데

환전소마다 차이가 크다. 

두브로브니크에선 1유로 = 7.2쿠나로 환전했는데  환전소마다 다르다.

 

스플리트도 다니면서 몇곳을 확인해보니

궁전 서쪽문으로 나와서 바닷가 쪽으로 좀 가다보면 아래사진의 동상이 나온다.

이동상 우측,  사진으로 정면 중앙(스마트폰으로 사진찍는 검정색옷 아주머니 뒷편)에 있는 환전소가 가장 잘쳐준다. 

1유로 = 7.32 정도 해준다.

다른 몇곳은 7.1, 6.9, 7.2 등 환률이 별루였다.  

더잘해주는곳도 있을수 있지만...우리가 돌아다녀본중에는 가장 좋았다

 

 

길거리에선 아이들을 위해 물방울퍼포먼스가 한창이다

 

 

 

강렬한 음악이 흐르는 전망좋은 2층 카페에서 맥주한잔 마시며 스플리트의 해넘이를 즐겨본다

 

 

 

 

 

 

스플리트에서 3박4일 일정도 서서히 막이 내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