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8 (토)
모스타르에서 2박후 사라예보로 이동한다.
이동거리는 약 130km 도로상태는 양호한편이고, 일부 공사중인곳도 있다.
이동하는동안 주변풍광이 뛰어나다.
사라예보 이동중 몇일전 사라예보를 다녀간 블로그에서 소매치기 당했다는 내용을 보고 긴장했었는데...
치안상태는 양호한편이다.
사라예보에선 1박한다. 관광할 시간이 부족할것같아서 이동후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시내구경에 나선다.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 모스타르, 사라예보를 거쳐오는동안 보스니아의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고속도로 화장실은 한국수준으로 좋다. 집들은 새단장을 했고, 도로정비도 꾸준히 하고 있다.
택시는 미터요금제이다. 아닌택시도 있다하는데...시내관광후 숙소까지 이동하는데 적정요금을 지불했다.
도심은 비교적 정돈된 분위기다. 볼거리도 제법 있어보인다.
그리고시민들& 관광객들로 시내중심가는 북적인다.
사라예보
Sarajevo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등 발칸 지역에서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역사를 지니게 된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성당과 모스크, 정교회와 시너고그(유대교 회당)가 지척에 위치한 유럽의 유일한 대도시라는 점만 봐도
사라예보가 얼마나 복잡한 역사와 다양성을 지닌 도시인지 잘 알 수 있다.
매우 비극적인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사라예보는 1991년 세르비아군과 민병대에 의해 3년간 포위되었다.
45만 명이었던 사라예보 인구는 내전 후 30만 명 정도만 남았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서방의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 사라예보는
방문하는 관광객의 숫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펌)
사라예보 라틴 다리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소
사라예보 이동중 보이는 풍경.
숙소도착.
숙소에서 바라보는뷰가 정말 멋지다.
숙소
뷰가 좋은 대신 비탈위에 있다. 접근하기 약간 까다롭다.
방에 에어컨이 없다. 모기도 약간 있고...본격적인 여름철에는 더위와 모기등으로 불편할수 있겠다.
아직까진 낮엔 더워도 저녁엔 시원한바람이 불어서 지낼만하다는게 다행이다.
침실에서 바라보는 샤라예보 전경. 언덕 사면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특이하면서 멋지다.
코바치 국립묘지
내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공동묘지
코바치 국립묘지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조성한 묘지이다.
1992년 보스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촉발된 내전으로 1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묘지 위쪽으로 옐로우 요새에 올라서면 사라예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곳곳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전쟁의 상처가 사라예보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묘비는 모두 백색인데 이것은 무슬림을 안장했다는 표시이다.
다른 지역에있는 검은색 묘비는 정교를 믿었던 희생자를 안장해 놓은 묘지이다.
(아래사진은 사라예보에서 쉽게 볼수있는 공동묘지임)
사라예보 라틴 다리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소
사라예보 시내를 지나는 밀야츠카(Miljacka) 강 위에 1798년 세워진
라틴 다리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흔적을 지닌 곳 중 하나이다.
1908년 보스니아를 강제로 합병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군대 사열식에 참석하는데,
오픈카를 타고 라틴 다리 위를 천천히 지나던 도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였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발칸 지역은 영토 확장을 호시탐탐 노리던 주변의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독일 역시 전쟁에 참여했으며,
세르비아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서유럽에서 독일과 경쟁하던 프랑스와 영국 역시 독일에 맞서 전쟁에 참여한다.
1918년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1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는 등 세계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뀐다.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으로 불렸지만
약 20년 후 더욱 큰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는 원인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라틴 다리는 세계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펌)
저격범이 현재 뮤지엄 위치(당시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와서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저격했다한다.
예수 성심 대성당(Katedrala Srca Isusova)
예수 성심 대성당은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상대적으로 수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톨릭 성당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878년 이후 보스니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가톨릭 신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계기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이다. 성당 외관에는 내전 당시 생긴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펌)
사라예보 장미(Sarajevo Roses)
내전이 끝난 후 약 1000개의 폭탄이 떨어져 아스팔트가 파여 있는 곳에
붉은색 고무를 채워 놓은 것을 ‘사라예보 장미’라고 부른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현재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다시 메워져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데
그중 하나를 예수 성심 대성당 앞에서 찾아볼 수 있다.(펌)
꺼지지 않는 불꽃(Ethernal Flame)
제2차 세계 대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로 특수 연료를 사용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대 꺼지지 않고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마지막이길 바라던 참혹함은
내전을 통해 사라예보에 다시 일어나고 만다.(펌)
사라예보 거리.
고전미가 풍기는 건물들...거리는 깨끗한편이다.
은행건물.
사라예보를 보면서 갑자기 남미 볼리비아의 라파즈가 생각났다.
산비탈에 도심이 형성된게 비슷해보였다.
집들은 사라예보가 세련되게 잘지었다. 규모는 라파즈가 훨 크다.
가장 다른점은 라파즈는 해발 3,100m~4,100m에 형성되어 숨쉬기가 버거웠는데
사라예보는 해발 500~600m 정도의 비탈에 형성된 도시다.
숙소가 산비탈 윗쪽에 있는게 당연하고, 뷰가 좋다는게 장점이다.
<스마트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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