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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알바니아 티라나 - 동유럽, 발칸여행

5/28 (화)

 

숙소에서 가볍게 10분정도 걸으면 티라나 중심광장에 도착할수 있어좋다.

알바니아 티라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게 하나 생겼다. 

알바니아 전국에 70만개 또는 17만개  어느숫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숫자의 벙커가 있다.  벙커를 만들때는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만....쓸데없는곳에 돈을 쏟아부었지 싶다.

 

티라나 메인광장 주변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카페에서 차한잔한후, 평점높다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길에 마켓에 들러 장보고, 벙커아트 박물관 구경하고, 좀 일찍 숙소에 들어왔다

 

벙커 내부를 공산시절 전시물로 채워 아트박물관으로 개조한곳 입구.

입장료는 500레크,  우리돈 5,000원이 조금 넘는다.

 

 

 

숙소에서 아침식사.

 

 

 

건물이 독특해서 찍었다.

 

 

 

메인광장.  스칸데르베그광장에 왔다.

 

 

 

 

 

 

광장주변으로 높은빌딩이 공사중이다.

 

 

 

 

 

 

 

 

 

뒷쪽의 피라미드형 건물은 폐가수준으로 방치중이다.

 

 

 

 

 

 

 

벙커.

도심에서 쉽게 볼수있다.

 

 

 

카페에서 커피한잔 하면서 쉬어가는데...가격이 비교적 착한편이다. 에스프레소 1잔에 900원정도,  아이스크림은 2,000원

카푸치노는 좀 비싸다 2,500원 수준...그런데 가격을 다합쳐도 한국에서 커피한잔값이다. 

어제갔던 슈퍼가 뭔가 비싸게 파는듯 보인다.

마케도니아보다는 물가가 세다.    특히 와인, 수입맥주등은 마케도니아와 차이가 많다. 

하지만 물가는 전체적으로 착한편이다. 

 

 

 

카페에서 커피한잔마신후 중심가에 있는 식당에 왔다.  구글검색해보니 맛집으로 평점이 높은집이라서 왔다.

 

 

스프와 빵 그리고 맥주.

 

 

메인요리 4개 시켰는데 가격이 3만원정도...요리는 전부 맛있다.

가격은 저렴한편이다. 

 

 

 

 

 

 

 

 

 

 

 

레스토랑은 Ejona.  식당입구 가격표다.  1레크 = 11원 정도한다.

 

 

 

 

 

숙소로 가는길에 벙커아트에 들렸다.

입장료는 500레크,  60세이상은 300레크 한다.

 

 

공산독재시절 만들어진 벙커내부에 그당시 상황을 알수있게 전시물로 꾸며졌다.

 

 

 

 

 

 

 

 

벙커 내부에는 강당, 이발소, 샤워실등등이 갖춰져있다.  규모가 꽤 큰편이다.

 

 

 

 

티라나는 자전거도로가 비교적 잘되어 있는듯 보인다.

 

 

도로의 바깥차선 또는 중앙에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건물색감이 화려한게 인상적이다.

 

 

 

알바니아는 발칸지역 나라중 최빈국이라하는데...물가는 가장 착하진않다.

아시아인 관광객들이 거의없다. 오늘하루 온전하게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안보인다.

무언가 특징적인 관광지가 적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알바니아는 발칸 국가 중 가장 먼저 건립되었다.
국토 크기는 한국의 4분의 1. 인구도 300만 명 정도.
알바니아인으로서 외국에서 살고있는 인구가 거의 1,500만명에 이른다. 
역사적으로 알바니아는 오스만의 통치를 받아왔다. 
또한 합스부르크의 통치를 거쳤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편입되지는 않았다. 

한때 일인당 국민소득이 700달러까지 떨어진 적이 있을 정도이다. 
1997년에는 국가파산에 이르렀다. 
전 국민의 60%가 피라미드 다단계에 관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급기야 시민쿠테타가 발생하였다.  
마침내 시민 쿠데타가 성공했다. 
이후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당시 일부 무장 시민들이 마피아를 조직하여 무기를 밀수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상당수가 마피아라는 말이 있다. 
빈부차이도 심하다.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 수도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다. 
시내 중심가에는 큰 광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독재정권이 방커를 만들어 지하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장 큰 벙커는 그 크기가 5층 높이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광장 옆에는 독재정권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평화의 종이 건립되어 있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