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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음에 드는 사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동유럽, 발칸여행 사진

두브로브니크 -> 보스니아 메주고리예 -> 모스타르 이동 - 동유럽, 발칸여행

6/6 (목)

두브로브니크 일정을 마치고 보스니아 모스타르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가는길에 성지순례코스중 하나인 메주고리예를 잠깐 들려본다.

 

두보르보니크에서 보스니아 모스타르로 갈때

차량으로 이동한다면 네움을 거쳐 이동해야한다.

 

네비가 알려주는 좀더 빠른길로 가려다 로컬 사람들만 통과되는 국경에서 되돌아 나왔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 네움(보스니아지역)을 거쳐 - 크로아티아로 다시 들어선후 -

보스니아로 나가야 한다.(역순도 동일함)

 

 

보스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럽 동남부와 발칸반도 서부에 위치하며,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국민 구성은 이슬람교도(48%), 세르비아인(37%), 크로아티아인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 350만명

화폐 마르카 (KM)

 

 

메주고리예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었으나 1981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나면서 가톨릭 신도들의 순례지로 각광받고 있다. 

1981년 6월 24일 여섯 명의 청소년이 마을 외곽의 언덕 위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이들이 성모님을 보았다고 증언하자 유고슬라비아 정부 당국은 이들을 조사했고 수시로 감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메주고리예는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지와는 달리 로마 교황청에서 성모발현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톨릭 신자들은 매년 수백만 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성당뒷편으로 야외예배용 의자가 넓게 자리잡고 있다.

 

수천명이 예배볼수 있는 규모라한다.

 

야외예배당을 지나 좀더 진행하면 청동 예수상을 만나게된다.

이 예수동상 무릅부위에서

땀처럼 물기가 묻어난다....신기한 현상이다.

기독교&카톨릭신자들에겐 신성한 현상일수 있겠다.

이 물기를 아픈곳에 바르면 아픈곳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항상 순례객들로 붐비는곳이다

 

물기를 크로즈업 해서 한장 담았다.

 

모스타르 숙소 도착.

이곳도 내부 인테리어가  럭셔리하다.

0층이라서 짐옮기는 부담도 없다. 

깔끔하고 쾌적하고  마켓도 가까운곳에 있다.

 

마켓에서 홍합, 소세지, 참치캔등을 사서 한별표 김치찌개 + 홍합조림(?)을 만들었는데...맛있다.

다만 먹는데 급해서 사진이 없다...ㅜ

 

숙소 내부 모습.

 

넓은 야외정원도 있다.

 

 

테키야수도원 & 모스타르 - 동유럽, 발칸여행

6/7 (금)

두브로브니크에선 아침엔 시원하고, 낮엔 구름이 많아서 더운줄 모르고 다녔는데

모스타르로 넘어오면서 급 여름날씨로 변했다.

전날 도착해보니 날이 넘 더워서 오늘 아침엔 오전내내 숙소에서 쉬었다 나간다.

아침, 점심은 숙소에서 해결하고,

 

모스타르 근교에 있는 테키야수도원에 갔다온후  모스타르 다리를 구경한다.

모스타르 다리는 3년전에 왔을때와 똑같다.  그런데 주변이 엄청 변해있다.

3년전까진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있었고 우중충한 느낌이 들었는데....3년만에 완전 관광지로 변했다.

 

다양한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새로지은 건물들이 많아졌다.

국제적인 관광지로 변모해가는중이지싶다.

3년전엔 다리위에서 다이빙하는사람이 없었는데 

관광객이 돈을 십시일반 걷어주면 다이빙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여하간 모스타르에 2번째 왔는데...우중충한 느낌 전혀안들고, 건물들이 새로 지어져서 분위기가  밝아졌다

여행오기전 발칸국가를 검색해보니 유일하게 보스니아만 여행주의 국가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모스타르는 치안이 양호한, 평온하고 안정적인 관광지이다.

 

돌이켜보면 치안은 그리스, 세르비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그리고 이곳 보스니아등이 비슷비슷해 보인다.

언제 어딜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메인관광지 주변은 낮시간때 치안은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항상 조심해야되지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다이빙 장면.

주변 관광객들이 돈을 걷어주면 한번씩 뛰어내린다고한다.

 

동유럽, 발칸에서의 김치는 매우 특별한 음식이다.  맛보기 쉽지않은 반찬이다.

한별표 김치는 한국에서의 맛과 동일하다.   

마법사같은 한별표 김치 덕분에 장기간 여행에 지치지않고, 음식스트레스 없이 여행할수 있었다.

 

테키야 수도원.

모스타르에서 약 15km정도 떨어진 불라가이라는 지역에 있다.

수도원옆 동굴에서 쏟아져 나오는물은 브나강의 발원지이다.

수도원은 1520년경 만들어진 이슬람교 수도원인데....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수도원입구까지 차를몰고 들어왔는데...주차료는 2유로다.

수도원은 입장료가 있다.  성인 2.5유로/1인

 

그리안 수도원 옆 공간에 레스토랑이 계곡옆으로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커피한잔 즐겨본다.

날씨가 모스타르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여름으로 변했다.  그래서 쉬엄쉬엄 움직이는중이다.

 

터키식 커피.- 맛은 씁쓸하다.  하지만 사진소품으로 그값은 했지싶다...ㅎ

 

수도원 내부.  소박하고 검소해 보인다.

 

이곳 수도원 입장시 복장에 대한 규제가 있다.

여자들은 스카프를 해야한다.

수도원 옆 계곡.

수도원 바로뒤로 커다란 바위산이 있고, 바위산 하단부 동굴속에서 엄청많은 수량의 물이 나온다.

지도를 찾아보니 이물의 원류를 찾지못하겠다. 즉 이곳이 발원지로 이하 강을 형성한다.

덩치큰 산 절벽밑 동굴에서 작은 강을 만들어낼만큼 많은 량의 물이 흘러나온다.

동굴속에서 나오는 물치고는 수량이 많다. 강처럼 흐른다.

 

동굴에서 나온 물은 바로 폭포가 되어 떨어지면서 멋진풍경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건너편 강가 카페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터키식커피 한잔했던 곳이다.

근사한곳에서 우아하게 쉬어가는 품격높은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ㅎ

수도원을 배경으로....

 

 

모스타르

Mostar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 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펌)

 

 

스타리 모스트!!

모스타르의 랜드마크

스타리 모스트’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모스타르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오스만 투르크가 1557년 건설을 시작했으며, 9년의 건축 기간을 거쳐 1566년 완공되었다.

석재만 이용해 만들어진 거대한 아치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건축 기술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다리의 폭은 4m, 길이는 30m이며, 네레트바 강에서 터의 높이는 약 24m이다.

 

유럽을 휩쓴 여러 번의 전쟁 속에서도 건재했던 스타리 모스트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타리 모스트의 명물 중 하나는 매년 7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벌어지는 다이빙 대회이다.

네레트바 강은 유속이 빠르고 수온이 상당히 차서,

숙련된 다이버가 아니면 스타리 모스트에서 쉽게 다이빙을 하기 어렵다. (펌)

다리는 3년전과 동일한데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건물색상은 밝은톤으로 변했다.

새로지은 건물들도 다수 있어서,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된다.

 

 

구경을 끝내고 저녁을 먹기위해 구글에서 평점이 좋다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요리들이 별루다.  동유럽, 발칸지역 음식을 많이 먹은것같다.

모듬고기.   양은 엄청많아서...2인분인데 4인이 먹고 남았다...다른요리 사진은 생략.

주차장 근처에 있는 보스니아 내전당시 전쟁의 상흔을 한장 남기고 모스타르 여행을 마무리한다.

 

보스니아가 기름값이 가장 저렴한것같다.( 디젤기준 약 1,570원/리터)   

몬테네그로도 좀 싼것같았고(1,670원/리터),  보통은 1,700원이 넘었던것같다.

크로아티아는 기름을 안넣어봐서 모르겠다. 시간이 나면 각국 기름값 비교를 해볼예정이다.

 

보스니아는 1마르카 = 680원   1유로 = 1.97마르카 정도 하는데

모스타르 시내는 대부분 유로가 통용된다. 

 

 

사라예보 - 동유럽, 발칸여행

6/8 (토)

모스타르에서 2박후 사라예보로 이동한다.

이동거리는 약 130km  도로상태는 양호한편이고, 일부 공사중인곳도 있다.

이동하는동안 주변풍광이 뛰어나다.

 

사라예보 이동중 몇일전 사라예보를 다녀간 블로그에서 소매치기 당했다는 내용을 보고 긴장했었는데...

치안상태는 양호한편이다.

사라예보에선 1박한다.  관광할 시간이 부족할것같아서 이동후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시내구경에 나선다.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 모스타르, 사라예보를 거쳐오는동안

보스니아의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고속도로 화장실은 한국수준으로 좋다.  집들은 새단장을 했고,  도로정비도 꾸준히 하고 있다.

택시는 미터요금제이다. 아닌택시도 있다하는데...시내관광후 숙소까지 이동하는데 적정요금을 지불했다.

도심은 비교적 정돈된 분위기다.  볼거리도 제법 있어보인다.

그리고시민들& 관광객들로 시내중심가는 북적인다. 

 

 

사라예보

Sarajevo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등 발칸 지역에서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역사를 지니게 된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성당과 모스크, 정교회와 시너고그(유대교 회당)가 지척에 위치한 유럽의 유일한 대도시라는 점만 봐도

사라예보가 얼마나 복잡한 역사와 다양성을 지닌 도시인지 잘 알 수 있다.

매우 비극적인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사라예보는 1991년 세르비아군과 민병대에 의해 3년간 포위되었다.

45만 명이었던 사라예보 인구는 내전 후 30만 명 정도만 남았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서방의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 사라예보는 방문하는 관광객의 숫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펌)

 

 

사라예보 라틴 다리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소

 

숙소도착.

숙소에서 바라보는뷰가 정말 멋지다.

 

 

숙소

뷰가 좋은 대신 비탈위에 있다.  접근하기 약간 까다롭다.

방에 에어컨이 없다. 모기도 약간 있고...본격적인 여름철에는 더위와 모기등으로 불편할수 있겠다.

아직까진 낮엔 더워도 저녁엔 시원한바람이 불어서 지낼만하다는게 다행이다.

코바치 국립묘지!!

내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공동묘지

코바치 국립묘지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조성한 묘지이다.

1992년 보스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촉발된 내전으로 1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묘지 위쪽으로 옐로우 요새에 올라서면 사라예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곳곳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전쟁의 상처가 사라예보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묘비는 모두 백색인데 이것은 무슬림을 안장했다는 표시이다. 

다른 지역에있는 검은색 묘비는 정교를 믿었던 희생자를 안장해 놓은 묘지이다.

(아래사진은 사라예보에서 쉽게 볼수있는 공동묘지임) 

 

 

 

사라예보 라틴 다리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소

사라예보 시내를 지나는 밀야츠카(Miljacka) 강 위에 1798년 세워진

라틴 다리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흔적을 지닌 곳 중 하나이다.

1908년 보스니아를 강제로 합병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군대 사열식에 참석하는데,

오픈카를 타고 라틴 다리 위를 천천히 지나던 도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였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독일 역시 전쟁에 참여했으며, 

세르비아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서유럽에서 독일과 경쟁하던 프랑스와 영국 역시 독일에 맞서 전쟁에 참여한다.

 

1918년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1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는 등 세계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뀐다.

라틴 다리는 세계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펌)

 

 

저격범이 현재 뮤지엄 위치(당시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와서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저격했다한다.

 

예수 성심 대성당(Katedrala Srca Isusova)

예수 성심 대성당은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상대적으로 수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톨릭 성당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878년 이후 보스니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가톨릭 신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계기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이다. 성당 외관에는 내전 당시 생긴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펌)

 

 

 

사라예보 장미(Sarajevo Roses)

내전이 끝난 후 약 1000개의 폭탄이 떨어져 아스팔트가 파여 있는 곳에

붉은색 고무를 채워 놓은 것을 ‘사라예보 장미’라고 부른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현재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다시 메워져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데

그중 하나를 예수 성심 대성당 앞에서 찾아볼 수 있다.(펌)

 

 

 

사라예보 거리.

고전미가 풍기는 건물들...거리는 깨끗한편이다.

 

 

은행건물.

사라예보를 보면서 갑자기 남미 볼리비아의 라파즈가 생각났다.

산비탈에 도심이 형성된게 비슷해보였다.

집들은 사라예보가 세련되게 잘지었다.  규모는 라파즈가 훨 크다.

가장 다른점은 라파즈는 해발 3,100m~4,100m에 형성되어 숨쉬기가 버거웠는데

사라예보는 해발 500~600m 정도의 비탈에 형성된 도시다.

숙소가 산비탈 윗쪽에 있어서 뷰가 좋다는게 장점이다.

 

 

 

사라예보 ->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이동 - 동유럽, 발칸여행

6/9 (일)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와 사랴예보의 짧은일정을 뒤로하고 크로아티아의 제2도시 스플리트로 이동한다.

산길보다 평탄한도로를 택하여 모스타르- 매주고리등을 역으로 거치면서

크로아티아에 진입하다보니 이동거리가 길어졌다.

310km,  이동시간은 2~3번 휴식포함 5시간이 좀 넘게 소요되었다.

 

보스니아는 계속 변화중이다. 도로를 새로건설하고, 집들은 예쁘게 단장중이다

17년전 큰 내전을 겪은후 3 민족 대표가 1년씩 번갈아가며

대통령을 하는 특이한 행정구조를 갖는 나라로 변모했다.

 

정치적으로는 비효율적인데...민족간 더 이상은 전쟁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라예보 야경.  -  숙소에서 전날 저녁 촬영.

 

 

사라예보에서 아침산책을 잠깐했는데...

어느집 안에서 송아지만한 시커먼 개가 나를보고 달려나와서 크게 짖어댄다.

이런 험상궂은 개를 묶어놓지도 않고....ㅜ

그 녀석이 짖어대니  동네개들이 전부 짖어댄다. 

결국 산책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장미가 예쁜집을 한컷담았다.

 

 

 

숙소에서 아침 사라예보 전경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