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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일)
날씨 : 맑음
산행코스 : 동학사 입구 - 큰배재 - 상신리 방향으로 내려선후 대둘팀과 합류 - 금잔디광장 - 신흥암 - 갑사 - 주차장 ( 산행시간은 의미 없슴)
대둘에서 매년 3월 1일이면 용산구곡 갑사구곡 답사 산행을 합니다.
일제 시대 정 반대의 삶(애국지사, 매국노)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의미있는 산행인데, 이번에는 3/1일 토요일이라서 3/2일에 테마산행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계룡산은 옛날 부터 네개의 큰절이 있었다.
동쪽에는 동학사, 서쪽에는 갑사, 남쪽에는 신원사가 있고 북쪽인 상신지구에는 구룡사가 있었다.
세 곳의 사찰은 지금도 건재하지만 구룡사는 폐찰되어 사지만 남아 있어 그 규모만 짐작할 수 있다..
용산구곡(龍山九曲)
1곡:심룡문(尋龍門) 용을 찾아 들어가는 문
2곡:은룡담(隱龍潭) 용이 숨어있는 못
3곡:와룡강(臥龍岡) 용이 엎드려 있는 산등성이
4곡:유룡대(游龍坮) 용이 해엄치는 곳
5곡:황룡암(黃龍岩) 황용이 잠시 쉬는 바위
6곡:견룡소(見龍沼) 용이 모습을 나타낸 못
7곡:운용택(雲龍澤) 용이 구름속에 노닐던 못
8곡:비룡추(飛龍湫) 용이 날아오른 폭포
9곡:신룡연(神龍淵) 용이 신선이 된 연못
취음 권중면(翠陰 權重冕) 1856~1936
구한말의 학자로 한양에서 태어나 조정에서 여러 내직을 거쳐 외직으로 황해도 평산군수로 나갔다가
능주군수로 있을 때 한일합방의 비보를 듣고 관직을 버린후 비통에 젖어 은거해 있다가
1916년 회갑되던 해 봄에 이곳 계룡산자락 상신리로 들어오셨다,
그의 학문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사랑채에 서당을 차리고 망국의 서러움 속에서
두문불출로 선비로서의 절개를 지켰으며 국운이 되살아나길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시다
광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81세되던 1936년에 돌아가신 비운과 절의의 선비이시다.
시집 52권, 문집 14권,기행문 1권등 모두 67권의 집필이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이 선생의 집을 3개월간 점거 사용하며 휴지와 불쏘시개로 사용하여 모두 없어지고
기행문인 "금강산유람기" 한권만 전할뿐 66권은 망실 되었다고 한다.
선생은 이곳에 사시면서 1932년 "용과함께 신이 숨을 쉬는 곳"이라는 의미를 붙여
상신리계곡에 9곡을 선정하여 직접 글씨를 쓰시고 바위에 새겼으니 잠들었든 용이 깨어나 승천하듯이
우리나라의 광복과 비상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바로 이곳"용산구곡"이다.
그의 아들은 단(丹)의 저자이자 우리나라 단학의 대가인 봉우 권태훈씨이다.
▣갑사구곡
갑사구곡은 새김이 깊고 정자로 씌여 있어 각자는 뚜렷하나
글씨체는 용산구곡만 못하다.
제1곡 용유소 龍游沼
제2곡 이일천 二一川
제3곡 백룡강 白龍岡
제4곡 달문택 達門澤
제5곡 금계암 金鷄嵒
제6곡 명월담 明月潭
제7곡 계명암 鷄鳴嵒
제8곡 용문폭 龍門瀑
제9곡 수정봉 水晶峯
계룡산 갑사옆으로 흐르는계곡에도 구곡이라 부르는 계곡이 있습니다.
갑사구곡은 순종황제의 두번째 정비인 정효황후의 숙부인 윤덕영이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어전회의 진행을 병풍뒤에 숨어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병조약에 날인할것을
강요하자 옥새를 치마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정효황후를 위협해서 옥새를 강탈한뒤
순종에게 합병늑약에 옥새를 찍으라고 강요했던 문제의 인물이다.
그가 갑사구곡이라 이름붙인 계곡의 바위들은 구곡이라는 시대적인이름과 친일파에
의해 새겨졋다는 이중의 치욕을 겪고 있는 셈이다.
수정봉에서 부터 용유소까지 계곡을 더듬어 내려오면 윤덕영의 별장인 "간성장"이란
이름을 새긴 바위만 하더라도 너댓군데가 넘는다.
친일의 댓가로 자작이된 그는 이 글자를 암각하려고 중국에서 각수(刻手)를 데려왔다고도 한다.
이곳 뿐만아니라 갑사구곡의 수많은 암각들은 주역을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의 삼교가 결합하고
천지인이 일체를 이룬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되어 우리나라의 국운이 크게 뻗어 나가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하필이면 친일파 윤덕영에 의해 새겨졌다는것이 안타깝다.
**지도는 클릭하면 크게볼수있으며 인쇄도 가능합니다***
전날 산행의 피로가 남아있어 늦잠을 자는바람에, 상신리 가는 임대 버스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동학사로 가서 큰배재로 올라 상신리쪽으로 내려서서 일행들과 만날수 있었지요.
이나무를 보면 참 예술적으로 생겼다 할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성장과정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래서 굴곡진 나무를 주제로 찍어 보았습니다.
반대로 정상적으로 잘 커온 나무들도 있고......
정상적인 나무들은 평범하기에, 파란 하늘을 표현하는 보조수단으로 담았지요.
함께한 일행들입니다.
2년전 3월 1일에 용산구곡과 갑사구곡을 정리한 내용이 있어서...
이번에는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을 주로 담았습니다.
기도.
천진보탑.
신흥암.
소나무가 어렵게 균형을 잡고 서있는 모습이 눈길을 끄네요...
간절한 마음들...
산행을 마친후 절집 마루에 앉아 쉬어간적이 있었던 기억을 담아서.... 한장 남깁니다.
갑사 대웅전.
기와 넘어로 문필봉인지 삼불봉인지... 그림같이 서 있네요
어느 봄날의 풍경....
겨울내내 움추렸었는데...
계룡산 갑사의 스님들도 봄볕을 마중나온듯 망중한의 모습입니다.
복수초.
오늘 일정의 마지막 답사지... 갑사구곡중 1곡 입니다.
계룡산에는 우리가 잊어선 안되는 용산구곡과 갑사구곡이 있습니다.
계룡산 삼불봉에서 신선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북쪽 상신리 계곡에 있는
용산구곡은 구한말 취음 권중명선생이 을사늑약의 비보를 듣고 이곳에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나길 바라며
잠들어있는 용이 깨어나서 힘차게 승천하는 과정을 9단계로 표현한 계곡이 있고,
반면에 갑사구곡은 순종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큰아버지인 친일파 윤덕영(1873-1940년)이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을 '구곡'이라 이름 붙이고 나서 간성장이란 별장을 지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말년을 흥청망청 보냈다고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현재....
매국노의 후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중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데....그러면 안되는데....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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