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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음에 드는 사진

22년 7월의 사진

용인 농촌테마파크 - 손자,손녀와 놀아주기

22/07/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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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사위가 최근 업무급증으로 바쁜데...코로나가 갑자기 확산세다.

어린이집도 다시 코로나에 영향을 받는다

돌발성으로 나오는 환자들 때문에 부득이하게 아가들을 돌봐줘야 한다.

집안에만 있기 답답할것같아서 야외로 나선다.

 

우연히 찾아간곳 용인 농촌테마파크

아이들과 놀기 나름 괜찮다. 다양한 체험관과 물놀이 그리고 원두막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매점과 식당이 내부에 있는데 오픈을 아직 안한상태다.

그래서 적당히 구경하고 휴식및 점심을 해결하러 근처에 있는 카페 라미르에 갔는데....카페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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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농촌테마파크
농촌테마파크는 곱등고개와 용담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속에 위치한 농업,농촌 체험장으로 
2006년 개장하여 도시민에 게 차별화된 일상의 전원체험 공간과 테마화된 가족단위의 
쾌적한 휴식,휴양과 다양한 체험교육등 건전한 여가문화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원두막을 이용하려면 용인시 홈페이지에 회원가입 후 예약날짜와 시간을 정해야 이용 가능하며, 
테마파크 내에는 식당과 매점도 운영한다. 
 
농촌테마파크는 웰빙 정원, 암석원,  덩굴원, 허브정 원, 화목류원, 체험학습장, 곤충전시관, 
자연친화형 소하천, 전통놀이 체험장, 작물학습원 농기계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운영하고 있다. 
 
주소 :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농촌파크로 80-1
문의 : 031-324-4081
관람 : 09:30 ~17:30 / 휴무 : 매주 월요일
입장 : 3,000원 (용인시민 입장료 무료) / 주차 : 무료 

 

 

 

 

용인 농촌테마파크 근처에 있는 카페 라미르.

이곳에서 빵과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카페 라미르.... 넓직한 공간이 좋았다.  빵과 음료도 괜찮았고...

(좋은 글)-퍼옴-
선유자익(善游者溺) - 『한비자(韓非子)』
“수영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다”

수영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있다고 방심하다가는 결국 그 자만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만다는 뜻입니다. 
<韓非子>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 
이들은 자신들이 잘하는 것에 도리어 화를 입는 것이다.'

수영을 잘한다고 자만하다가 결국 물애 빠져 죽게 되고, 
말을 잘 탄다고 자랑하다 결국 말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면 논리에 맞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해 보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하다고 하는 일에 자만하고 마음을 놓다가 실패를 경험합니다. 
사소한 것을 지나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선유자익(善游者溺) :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선기자추(善騎者墜) :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공한 순간 방심한다는 것입니다. 
잘하기 때문에 자만하여 실패하는 것이죠.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 그냥 흘려들을 일은 아닌 듯합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나무를 너무 잘 타기 때문입니다."

 

 

융건릉 - 비오거나 흐린날 산책하기좋은곳

7/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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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추존장조와 헌경 황후)

융릉은 추존된 장조 사도세자와 헌경황후 홍씨의 능이다.
장조는, 영조의 아들로, 2세에 왕세자가 되었고 
이후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기도 했다. 
붕당정치의 갈등에 희생되어 1762년 영조 38년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장헌세자로 추존되고 무덤이 이곳으로 옮겨져 현륭원이 되었다. 
1899년 장조의 황제로 추존되었고, 능의 이름은 융릉이 되었다.
헌경 황후는 1744년 영조 20년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남편 장조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혜경궁이 되었으며, 이후 자서전 한중록을 집필하였다. 
1899년 광무 3년 헌경의황후로 추존되었다.
능에는 난간석이 없고 '병풍석만 있는데, 병풍석에는 모란과 연꽃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이는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한 정조의 효심이 빚어낸 작품이라 할수 있다.

사도 : 생각할 '사', 슬퍼할 '도'라는 뜻
추존 : 세상을 떠난 후 신분 등을 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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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의 능이다.
정조는 추존 장조의 둘째 아들로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당파와 신분의 구분없이 능력과 학문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다. 
학문연구 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수원 화성을건축하는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효의황후는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되었다. 
생전에 검소하게 지내어 순조가 잘 모셨다고 한다. 
건릉은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현륭원 융릉 동쪽에 조성되었다.
그러나 풍수상 좋지않은 땅이라고 하여 효의황후가 세상을떠난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합장릉으로 조성되었다.

 

 

 

융건릉은 2~3시간정도 산책하기 최고의 장소다.

대부분 길은 숲길이면서 완만하다.

중간중간 쉼터도 많아,  여유있게 즐길수 있다

 

 

소나무가 예술품들이다. 눈이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길이기도하다.

 

 

비가 내린후라서 더더욱 숲이 싱그럽다.

 

 

지금까지 가본 왕릉중에 숲길로는 최고이지싶다.

왕릉 형태는 거의 비슷비슷하다.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빨리 지나가기가 아깝다.

 

 

곤신지
곤신지는 1789년(정조 13) 현륭원(융릉)이 현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후 이듬해에 조성한 원형의 연못이다.
조선왕릉중 드물게 연못을 원형으로 조성한곳으로. 용의 여의주'의 형상이라고 한다.
이 연못은 남서방향으로, 이 자리는 융릉의 생방이기 때문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생방 : 수지리 용어로 능묘 자리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

 

 

 

 

 

숲길이 넘 마음에 든다.

 

융건릉은 햇살이 강한 맑은 날이라도 숲이 우거져 그늘이 많을것같고, 

다른곳보다 시원할것같다.

하지만 비온날 또는 흐린날 멍때리며 걷기에 정말 좋다.

흙길인데 질퍽거리지않다. 야자수 매트가 깔린곳도 제법 된다.

걷다가 언덕위 의자에 앉으면 기분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산책하기 정말 좋은길이다.

 

(좋은 글)-퍼옴-

학택지사(涸澤之蛇) - 《韓非子》

"작은 뱀을 태우고 행군하라!”

 

  내가 높아지려면 내 주변 사람부터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높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주변 사람을 무시한다면,

결코 나 역시 남에게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韓非子》에 보면 물이 말라버린 연못 속의 뱀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런 역설의 미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이 말라 버린 연못에 사는 뱀들이 생존전략은 이렇습니다.

어느 여름날, 가뭄에 연못의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그 연목 속에서 사는 뱀들은 다른 연못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죠.

이때 연못에 사는 작은 뱀이 나서서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앞장서고 내가 뒤따라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통 뱀인 줄 알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등에 태우고 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조그만 나를 당신처럼 큰 뱀이 떠받드는 것을 보고,

나를 아주 신성한 뱀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 아무런 해도 안 끼치고 오히려 떠받들 것입니다.”

 

큰 뱀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뱀들은 당당히 사람들이 많은 길로 이동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큰 뱀이 작은 뱀을 떠받드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며 뱀들을 건들지 않았고,

뱀들은 목적지까지 아무런 장애 없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윗사람이 부하직원을 떠받드는 것이 결국 조직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고사입니다.

 

  학택지사(涸澤之蛇) : 말라버린 연못의 뱀이 생존하려면 큰 뱀이 작은 뱀을 섬겨야 한다.

 

  《韓非子》의 이 고사는 윗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부하들을 대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리더보다 뛰어난 부하가 어디 있겠습니까? 능력이 있다면 그가 리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못한 부하를 남이 보는 가운데 더욱 우대하고 대접해 준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경외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부하직원을 무시하기 보다는

그들의 작은 능력이라도 인정해주고 북돋아준다면 결국 조직을 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섬김’은 위대한 리더의 필수 조건입니다.”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백골산성 낭만길)

7/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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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교 - 흥진마을 - 벚꽃길 - 바깥아감 - 비밀정원 - 신상동주차장 ( 약 9km,  4시간 소요됨 )

대둘회원 22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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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컨디션이 별루여서 쉬었고,

일요일엔 가볍게 걷고 싶어 대둘 주관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에 참여한다.

대둘 안내지기님이 백골산성을 생략하고 대청호반 위주로 걷는다.

예전에 대청호길을 걸으며, 호반길을따라 구석구석 다녔을때 왔었는데...길이 새롭다.

 

 

 

신상동 주차장.

벚꽃필때만 주차장이 꽉찰것같은 넓은 공간이다.

이곳에 주차후 신상교로 이동하여 버스타고 오는 대둘회원과 합류한다.

 

 

비밀정원(?) 호숫가에서...

 

 

 

 

 

 

충암김정선생 부인 정려문
충암 김정(1486~1521) 선생의 부인인 은진 송씨의 정려문이다. 
송씨부인은 쌍청당 송유의 현 손녀로 진사 여익의 딸이다. 
1521년 (중종 16) 김정선생이 제주에서 사사되자 같이 세상을 떠나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있어 자결을 못하고 효도로 부모를 공양하였다. 
이후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8일 동안 음식을 전폐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효성 지극한 마음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받게하기 위하여 1803년(순조 3)정려되었다.

김정선생 묘소일원
지정 번호: 문화재자료제25호
위 치 : 동구 신하동268-5
조선 중종때 형조판서겸 예문관 제학을 지낸 충암 김정(1486~1521) 선생과 관계된 유적이 자리한 곳이다.
선생은 조광조와 더불어 향약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큰 업적을 남겼고, 
기묘사화(1519)때 조광조등과 함께감옥에 갇혔다가 금산에 유배된후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았다. 
1978년 대청댐 수몰로 물에 잠긴 대덕군 동면 내탑리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기면서
충암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별묘, 산해당 그리고 그의 부인의 정려각등도 함께 옮겼다.

 

 

 

비밀정원의 호숫가.

(비밀정원은 대둘 안내지기 난초님이 명명한 별칭이다.  이곳은 논밭형태로 되어 있어서 정식명칭은 잘 모르겠다. 

네이버나 다음지도에선 동산고개로 표시되고 주소는 대전 동구 산하동 일원이다)

 

건너편 방축골의 팡시온이 보인다.

사람들은 등반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자신을 이겨내고 힘든 일을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얻고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낸 뒤에 얻는 해탈과 비슷한 정신의 안정을 얻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높은 곳을 다른 사람과 다른 방법으로 오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도전과 개척정신 때문일 것이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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