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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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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금)

매토님한테서 문자가 온다.  시간있냐고...그래서 따라나섰다.

덕분에 상큼한 봄맞이 콧바람을 잔뜩 마신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진산에가서 막국수 한그릇에 막걸리한잔하고 태고사를 차로 오른다.

대둔산 낙조대 주변 암릉으로 둘러쌓인 명당터에 자리잡은 태고사는 조망이 좋다.

분위기는 더 괜찮은 사찰이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를 한잔하고 평상에서 한참을 쉬었다.

 

내려오는길 저수지 근처의 식당에서 커피한잔 하고온다.

최근에 블로그글 소재가 마당치않아 잠시 쉬고 있었는데 번개이벤트로 안성맞춤이다...ㅎ

 

대둔산 태고사 
위 치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청림동로 440
시 대 : 신라시대 창건

태고사는 대둔산 마천대 동쪽 능선 낙조대 밑에 위치한 절로,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이 절터를 본 원효대사는 주변 경관이 너무도 빼어나서 기쁜 마음에
 "세세생생 도인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3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태고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삼창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에서 조선시대의 학자 우암송시열이 수학하였으며 
절입구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 이라는 글씨도 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으며, 
이후 1962년에 도천대사께서 주지를 맡으셔서 
3칸 규모의 작은 집을 지어 불상을 모셔오다가 
1976년에 무량수전, 관음전과 함께 
정면 7칸, 우측 2.5칸 좌측 3칸 규모의 다자형 건물로 복원 되었다.

 

 

오대산 능선.

 

 

태고사 입구의 석문.

 

 

진산의 막국수...양이 푸짐하고 맛있다.

굿~~

(좋은 글)-퍼옴-
천지비(天地否) - 《周易》
“군자는 물러나고 소인만 득실하다!”

  어떤 조직이든 소통(疏通)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지식들이 서로 소통하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이고, 
국가는 온 국민이 소통하면 부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소통의 부재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부와 국민, 도시와 농촌,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가 소통이 막혀 있다는 지적입니다.

  소통과 관련하여 가장 적극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동양 고전은 《周易》입니다. 
《周易》은 소통의 고전입니다. 
《周易》 64괘를 보면 얼마나 通하고 있느냐에 따라 
조직의 흥망이 교차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周易》에서 소통과 관련하여 최악의 소통을 나타내는 괘를 꼽으라면 12번째 비(否)괘입니다.

  천지비괘(天地否卦)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 있으니 당연히 안정적으로 보이겠죠. 
그러나 하늘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향하여 자신만 옳다 하며 군림하려하고, 
땅은 자신아 잘났다고 아래로 향해 등을 돌리고 있으니 
상하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서로 등을 지고 해볼 테면 해보자는 갈등과 반목의 형상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조직은 폐색(閉塞)되고 소통은 단절되게 됩니다.

  《周易》의 비(否)괘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否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상이다. 하늘가 당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니 만물이 불통이다. 
상하가 교류가 안 되고 있으니 하늘 아래 제대로 나라가 존재하지 못한다. 
소인들만 중앙에 득실거리고 훌륭한 군자들은 밖에 머물러 있다. 
소인들의 도는 날로 자라고 군자들의 도는 날로 소명되어 간다.’

  천지비(天地否) : 하늘과 땅이 막혔구나!
  천지불교이만물(天地不交而萬物) :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니,
  불통야(不通也) : 만물이 불통이로다!

  고대 제왕들의 가장 중요한 리더십은 바로 소통(疏通)이었습니다. 
소통은 명령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낮은 곳으로 임하는 리더의 자세에서 리더를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자발적 소통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주역의 원리가 變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은 늘 변한다는 것인데요. 당장은 막혀 있지만 결국 소통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불통(不通)은 결국 소통(疏通)으로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