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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충청

대청호 구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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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토)

한토 회원 40명과 함께

코스 : 대청댐 잔디광장 - 금호 송어양식장 - 장승공원 - 구룡산 - 현암사 - 대청댐 잔디광장

         ( 약 8km ,  여유있게 4시간 소요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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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증상이 살짝 있었다. 

약 2주 전부터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해졌다.  목 안쪽이 가혹 간질거린다.

1주 전쯤엔 하루정도 콧물이 나오기도했다. 

오늘(4/23) 현재 증상은 목소리만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주변에 코로나 환자들이 여럿 있어서 코로나 검사를 4번 했다

병원에서, 시청앞 남문광장에서 그리고 자가키트로 2번...모두 음성이다.

한토 산행지가 대청댐 근처 구룡산이라해서, 그리고 여러 이유로 한토에 나간지 오래되었기에

한토 산행에 참석했다.

 

오늘 코스는 대청호 오백리길 21구간 + 1구간 중 걷기 좋은부분만 잘라내서 원점회귀코스로 만들었다.

그런데 비상여수로댐 이후 금호송어장까지 구간이 도로옆이라 덥고, 안전사고 위험도 있어서 부담스러워 

절반정도를 생략하고 대신 로하스 캠핑장까지 진행하는 일부인원 픽업을 해준다

사진도 찍을겸 겸사겸사 여유있게 걸었다.

 

오늘 대청호는 반영이 넘 예쁘다.

산, 나무, 꽃, 건물, 하늘등이 유리거울에 반사된듯 깔끔한 반영을 보여준다

걷는 내내 대청호 풍경을 찍으며 산책하듯 가볍게 걸었다

 

 

 

 

민들레는 '민들레', '흰민들레', '서양민들레' 3가지가 있다.

연한 노란색의 '민들레''흰민들레'는 토종 민들레이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샛노란 민들레가 '서양민들레'이다.

더 확실하게는 꽃을 받쳐 주는 총포가 아래로 젖혀진 것이 외래종이란다.

 

흰민들레.

 

 

 

탱자나무 꽃.

으아리를 닮은 이쁜 꽃이다.

 

 

 

모란꽃

중국 유일의 여황제였던 당나라의 측천무후(624~705)는 어느 겨울날, 꽃나무들에게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령을 내린다. 다른 꽃들은 모두 이 명령을 따랐으나 모란만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래서 불을 때 강제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화가 난 황제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낙양으로 추방시켜버렸다. 이후 모란은 ‘낙양화’로도 불렸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1)

 

모란은 중국 중서부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자그마한 꽃나무다. 원래는 약용식물로 재배되어 왔지만, 양귀비를 모란에 비유하는 등 당나라 이후 모란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대상물이 되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의 대표 자리는 모란이 차지했다. 그래서 모란은 예로부터 화왕(花王)이라 하여 꽃 중의 꽃으로 꼽았다. 또한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으로 청나라 이후 중국의 국화로 대접받았다. 1929년에 국화를 매화로 바꾸었으나 당시의 장개석 정부가 타이완에 망명해버리면서 아직 중국은 국화가 정해지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사랑받던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식물이 언제 수입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모란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선덕여왕 1년(632)에 모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져 온다.

 

이렇게 모란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금방 신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 된 것 같다. 신문왕(681~691) 때에는 설총이 〈화왕계(花王戒)〉라는 설화를 지어 후세의 임금이 덕목으로 삼도록 했다. 화왕인 모란꽃이 다스리는 꽃 나라에 어느 날 어여쁜 장미와 구부정하고 볼품없는 할미꽃이 찾아와 서로 자기를 써 달라고 했다. 화왕인 모란꽃은 고심하다 충신인 할미꽃을 선택했다는 내용이다. 고려로 넘어오면서 미인을 상징하고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꽃으로 모란은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더욱 사랑받게 되었다. 국보 98호인 12세기의 청자상감모란문항(靑磁象嵌牡丹文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려청자 상감과 여러 생활도구의 꽃무늬는 대부분 모란이 자리 잡았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모란을 숭상하는 풍속은 그대로 남았다. 특히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민화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이 가장 흔하게 그려졌다. 전통 혼례복이나 신방의 병풍에도 모란은 빠지지 않았다.

 

모란은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작은 나무로 보통 키가 1미터 남짓 자란다. 3~5개의 작은 잎이 같이 붙어 있는 겹잎이며 끝이 깊게 갈라진다. 꽃은 붉은 자줏빛의 꽃잎이 5~8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접시만 한 큰 꽃이 가지 끝에 피는데 일주일쯤 간다. 꽃의 색깔은 붉은색 계통이 가장 많고 여러 원예품종이 있다.

 

모란은 꽃뿐만 아니라 여성의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모란 뿌리는 어혈을 없애고 여자의 월경이 없는 것과 피가 몰린 것, 요통을 낫게 하며 유산시키고 태반을 나오게 하며 해산 후의 여러 가지 병을 낫게 한다. 고름을 빨아내고 타박상의 어혈을 삭게 한다”라고 했다.(다음백과에서 펌)

 

 

현암사 앞마당에 핀 모란꽃

 

(좋은 글)-퍼옴-
주천(酒泉) - 『한서(漢書)』
“실크로드로 가는 술 익는 마을”

한나라 무제 때 곽거병이란 장군은 병사들의 떨어진 사기를 독특한 방법을 다시 일으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3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서역을 정벌하러 나갔던 곽 장군은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을 때, 
중앙의 황제인 한무제가 전장으로 보내온 술 한 병을 이용하여 그들의 사기를 끌어올립니다.
병사들을 오아시스에 모이게 하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타며 이렇게 외칩니다. 
"이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 황제가 우리에게 내려준 술이다. 
우리 이 술을 함께 마시고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자."

비록 술 한 병을 섞은 물이었지만 단순한 물이 아니라 황제가 하사한 술이었습니다. 
자신 혼자 마시는 것을 포기하고 병사들과 함께 하려는 장군의 따뜻함이 녹아 있는 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의를 불태웠고, 결국 서역정벌에서 성공하여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오아시스 이름을 주천(酒泉)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서역 실크로드로 들어가는 인구 20만 명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인자지향, 주천(仁者之鄕, 酒泉) : 배려(仁)의 고향, 주천

마음을 위로해 줄 리더의 따듯함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이 시대에 '주천'이란 고을 이름 하나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훗날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어떻게 따뜻한 정을 나누며 난세를 겪어왔는지를 잘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지명(地名) 말입니다.

“난세에 술보다 맛있는 것은 따뜻한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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