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루 리마 >
인구 약 900만명의 도시. 페루의 수도.
페루의 수도인 리마 시가 있는 곳으로,연안지역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며 안데스 산맥에서 흘러오는 강이 있는 곳에서만 관개가 가능하다.
특히 6~10월까지는 두꺼운 구름층이 연안지역을 덮고 있다.
이 구름층이 해발 약 760~1,200m에 이르는 산의 경사면과 맞닿는 곳에는 '로마'라고 하는 소먹이용 일년생 초본류 식물이 우거져 있다.
리마는 페루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다.
리마를 중심으로 가까운 카야오 헌법주(리마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항구)에 이르는 지역에만 페루 인구의 약 1/3이 몰려 있다.
이 대도시권은 구체적으로 리마 시, 리마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리마 주 내의 25개 도시지역, 카야오 주의 도시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의 요 맥주 쿠스케냐.... 맛있다.
쿠스코의 여인이라는 의미의 쿠스케냐가 있어서 페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구시가지의 옛성당, 대통령궁, 광장,
신시가지(미라플로레스)의 깔끔하고 세련된 빌딩들을 제외하면
리마 주변부 대부분의 건물은 붉은벽돌로 만든 건물인데
황사와 같은 모래분진과 자동차의 매연으로 덮혀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는듯보인다.
페루는 국토가 한국의 13배, 인구는 약 3,000만명, 수도리마에는 약 900만명이 거주한다
신시가지쪽은 치안이 확보되어 있어 여행하는데 부담이 없는지역이고,
그외 기타지역을 돌아다닐때는 안전에 신경써야한다.
< 까하마르카 >
잉카 멸망의 역사와 까하마르까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Cajamarca, '까하(상자) 마르까(표시하다)'.
잉카 몰락의 전주곡을 울렸던 도시다.
까떼드랄 성당이 있고 바뇨스 델 잉카(잉카 온천)가 있다.
바뇨스 델 잉카는 잉카의 왕 아따알빠가 머물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동생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온천수에서 몸을 풀고 쉬다가 스페인의 삐사로 군대가 음모를 꾸밀 시간을
마련해주어 결국 잉카가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서글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80도의 유황 온천수는 솟고 있고 그 옆에는 꽃도 피고 있다.
현지인 모니카 - 에소님의 스페인어 전화학습 강사인데
사는곳은 3일후 가게될 뚜르히요에 있고, 까하마르까에서 태어나 15년간 살았다고 한다.

포르콘 동물농장
공동체 생활을 하는 특별한곳.
농산물 집단재배, 판매하는 자급자족 경제 공동체. 부족한 수입원은 관광객을 상대로 동물농장 입장료로 채운다.
목축과 농업을 주로하고, 주민 각자가 공동체에서 일을 배분받아 한다.
이곳은 가족단위로 놀러오기 좋은곳인듯 싶다.



현지인이 쓰고 있는 특이한 저모자.
가격이 제법 세다 100불 ~ 280불 정도한다.
우리네 명품백 들고다니는것과 비슷한듯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듯...싶다.

< 뜨루히요 >
뜨루히요는 페루 제 3의 리마 북부 도시이다.
리마 - 아레키파 -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잉카제국에 점령당하기 이전 번성했던 치무제국의 수도였던곳이다.
스페인군은 남미를 점령한후 재물과 자원과 노동력 착취는 물론이고 잉카인들의 영혼까지 정복하려 하기위해
인디언들의 문화를 알기위해 노력했다고한다.
뜨루히요는 중세 유럽풍 건물이 있는 중앙지역과 고대유적지들이 위치한 외곽지역으로 구분되는데
페루를 정복한 스페인장군 피사로의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옛것을 모두없애고, 인디언들의 기를 누르기위해 인디언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장소에 성당을 짓고
그성당을 중심으로 도시가 설계되고 건설된곳이다.
대부분의 남미 식민시대 도시들이 겉은 화려한것 같지만, 그밑바닥에 깊은 아픔이 있고, 뜨루히요 역시 동일하다.
뜨루히요 시민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인데, 그비율이 유럽보다도 높다고 한다.
이유는 카톨릭을 믿지않으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라하는데...
자신의 종교만을 강요하는 그런 종교, raintree가 종교을 멀리하는 여러이유중 하나다.
치안이 불안한듯 구멍가게에 철장이 쳐져있고, 낡은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고, 황량함이 드는 사막도시 뜨루히요
하지만 중심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페루 제3의 도시답게 상업활동으로 활기가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페루 리마북부의 중심도시인 뜨루히요나 까하마르카는
아직 한국에 덜 알려진 관광지여서인지....한국사람은 대학에서 우연히 한분 만난것 이외에는 없을 정도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반전에 반전
극과 극을 경험했던 긴 시간이 흐르고, 최상의 결과물이 펼쳐졌다.
트루히요 공항에서 발이 묶여 공항난민으로 전락하고 난후 서울의 딸아이를 저녁~ 새벽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대기시키고 비행기표를 구하려 시도중 이었는데,
그 사이 모니카 부모님까지 동원되고, 여러 루트로 확인해보니
신뢰도가 높진 않지만 도로유실로 발묶인 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리마행 소형 임시 비행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모니카 부모님은 임시 비행편을 확인하고, 서울의 에소님 딸은 저녁 비행기편 티켓팅을 시도하는 투트랙으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임시 비행편에 대한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률이 낮아지고, 약속된 시간보다 2시간이 넘게 지나면서 임시비행편은 포기하고
새벽시간 컴퓨터 앞에 대기중인 에소님 딸에게 트루히요 ~ 리마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라한다.
전날 버스가 끊긴것을 확인한 저녁 이후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하고 트루히요 공항 한쪽 구석에서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쪽 저쪽 어디든 혹시나
좋은소식이 없을까 기다리고 있는데 부정적인 소식만 들린다.
임시편 항공기에 대한 이야기는 부정적이고, 에소님 딸아이의 서울에서 항공권 예매는 번번히 보안문제로 예매가 안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될때쯤
군인한명이 다가오더니 치클라요에서 리마로 가는 군용헬기가 있는데, 30분후 뜨루히요에서 도착해서 잠시 정차했다 간다고한다.
중요한건 헬기조종사의 승인이 나면 그 헬기편으로 리마까지 갈수있다고 대기하라고...
이렇게 되기까지 모니카의 부모님이 열일 제쳐두고 이리저리 연락하면서 여러곳 부탁했을것같아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결론은 간단한 짐검사후 헬기에 탑승. 2시간 30분 비행으로 리마에 도착할수있었고,
군인중 한명이 헬기 문을 열어놓은 조수석을 양보하면서 raintree에게 사진을 찍으라 한다.
겹경사는 이럴때를 두고 하는말이 아닐까.... 해안가를 따라 비행하는 헬기위에서 페루의 아름다운 해안을 담을수 있었다.
참고로 트루히요 ~ 리마까지 도로로는 700km정도 되고, 직선거리로는 약 500km정도 된다.
수만마리의 새떼위를 지나가기도한다.
산소절단기로 절단한듯한 해안가모습도 보인다.
< 아레키파 >
아레키파(Arequipa)
칠리 강 유역 해발 2,30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잉카 제국 때에 쿠스코에서 해안으로 연결되는 주요길목이었다.
1540년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명령에 따라 이 지방에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재건된 곳으로,
원래 지명은 누에스트라세뇨라데라아순시온델바예에르모소(아름다운 계곡에서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였다.
아레키파 시는 꼭대기가 눈으로 덮인 해발 5,821m의 미스티 화산 기슭에, 눈덮인 몇몇 다른 산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체로 화산활동이 있을 때 발생하는 지진으로 여러 차례 피해를 입었다.
1960년대에 심한 지진이 있었다. 연강수량은 약 100㎜, 연평균기온은 14℃이다.
주변지역의 기름진 땅에서는 곡류와 목초를 비롯한 여러 가지 농작물을 생산한다.
아레키파는 페루의 양모가공처리 중심지이며 다양한 산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페루 남부의 상업·정치·군사 중심지로서 전국 각지와 연결되는 비행기·철도·고속도로 등의 교통편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 지방에서 나는 백색 화산암인 실라로 지은 건축물이 즐비한 아레키파 시는 페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대주교 교구 소재지이며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세운 대성당(1612) 하나와 교회가 여러 개 남아 있다.
국립 산아구스틴 대학교(1828)·산타마리아 가톨릭 대학교(1961)가 있으며, 수영장·온천, 부근에 잉카 유적들이 있어 관광 중심지로도 인기 있다.
아레키파 역사지구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 Monasterio de Santa
Catalina으로 향했다.
1580년에 세워진 곳으로 아레키파뿐 아니라 페루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종교 시설이다.
2만 제곱킬로미터 부지에 세워진 수녀원의 건축물엔 16세기부터 19세기를 아우르는 아레키파 건축사가 집약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다. 수녀로 들어온 이는 대부분 페루에 사는 스페인 귀족 가문의 자녀들.
1600년대에는 500여 명에 달하는 수녀와 그들의 하인을 비롯한 고용인들이 거주했다.
당시 수녀가 얼마나 인기 높은 작업이었는지 실감하게 하는 수치다. 14세에 수녀원에 들어온 뒤 평생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폐쇄된 생활이긴 했지만 규율이 엄격하진 않았다.
알록달록한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은 종교 시설이라기보단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고성 같았다.
미로처럼 얽힌 회랑, 과실수가 자라는 뜰, 정원과 분수, 벽과 보색을 이루는 화려한 꽃들…
수녀원이라고 하기엔 곳곳에 생기가 넘쳤다. “이런 곳이라면 평생 감금되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지참금이 꽤 높았거든요.
액수에 따라 방의 크기가 달랐으니까요.” 과연 그랬다. 어떤 침소엔 책상과 낡은 침대뿐이었지만
어떤 침소는 화려한 가구와 패브릭,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자신을 보필하는 몸종까지 따로 둔 수녀도 있었단다.
19세기 후반, 도미니카 수도회가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을 접수한 후 이곳은 장막에 가려진 공간이 됐다.
1970년, 관광객에게 내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수녀원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로 1세기를 보냈다.
오늘날엔 대부분의 장소가 대중에게 열려있다. 26명의 수녀만이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산타 카탈리나의 역사를 잇는다.(펌)
끝없이 펼쳐지는 다락논 전경.
4,500m 의 고원 평원
미스티화산
< 쿠스코 >
쿠스코(Cuzco)
안데스 산맥의 해발 3,399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널리 세력을 미쳤던 잉카 제국의 수도로서 '중앙부'라는 뜻의
케추아 인디언어에서 이름이 유래된 쿠스코의 역사는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와 주변지역으로 우아타나이 강이 흐르며 사크사우아만 요새, 태양신전, 주거지 등을 비롯해서 광대한 잉카 이전시대와 잉카 문명의 유적들이 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군대가 1533년에 쿠스코를 점령하여 약탈했다. 그 직후에 지방자치 시 당국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1650년에 발생한 일련의 지진들로 인해 도시가 거의 파괴되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쿠스코는 후에 주로 그림·조각·보석류·장식목공품 등 훌륭한 예술품을 다량 생산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중요한 건물들로 1654년 잉카 궁터에 완공된 대성당, 산안토니오아바드델쿠스코국립대학교(1692) 외에
교회·수도원·수녀원이 많이 있다.
상공업 중심지인 이 도시에서는 직물·양탄자·맥주가 생산된다. 교통의 요충지로서 비행기·도로·철도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광장 베란다에는 모닝커피를 즐기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비둘기가 열애중이다...ㅎ
비니쿤카. 일명 무지개산
말도 힘들지만 70솔 ~ 80솔에 약 5시간정도 슬리퍼를 신고, 말을끌고 비니쿤카를 오르내리는 마부의 고생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걸어서 올라가는사람들.
언덕길에선 예외없이 힘들어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말을 이용해서 올라간다.

비니쿤카. 일명 무지개산 트레킹을 정리하면
2017년 4월 현재
비용은 70솔 정도가 거의 최저 수준일듯....일부 65솔에 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침, 점심, 입장료, 가이드까지 붙으면
가격은 더이상 내려가기 쉽지않을듯 싶다. (1솔 = 약 350원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힘들다.
시간을 약 6시간 주는데, 해발 4300m 에서 시작해서 ~ 5100m 까지 올라가야하고, 왕복 17.5km정도 된다 ( 산길샘 앱기준 )
말을 타고가면 비용은 왕복 70솔 ~ 80솔하는데 약 5시간정도 타고, 크게 힘들지않게 오를수 있다 - 권장
말타는 비용도 절대 아깝지 않다. 아니 미안할정도로 싸다. 팁으로 좀더 주고싶은 마음이 들정도다.
물론 체력이되고, 고산증에 적응되었다면 걸어서 올라가는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무지개산은 올라가는내내 경치가 정말 좋은곳이다.
아레키파에 있는 꼴까계곡 보다 훨 ~ 좋다. 2~3배정도는 좋은것같다. (raintree기준)
비니쿤카의 단점은
비포장 진입로가 꽤 긴데....위험해보인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접근로가 험한부분은 감안하시길...
2016년도에 개발된 관광지라서 앞으로 좀더 다듬어지길 희망해본다.
등산로가 꽤나 질척더린다. 말똥과 진흙이 뒤범벅된길이라 생각하면 맞다.
걸어서 올라갔다온 사람들중 상당수는 미끄러 넘어진 흔적들이 엉덩이 부분에 남았다.
당연히 신발과 바지 하단부는 엉망이 된다.
고도가 높은산이라서 기온변화, 날씨변화가 심하다.
해가나면 좀 덥다가, 4500m 이상 넘어가면 비가내리다 우박으로 변하고, 손도 시렵고 등등
기후변화에 대한 여벌옷, 장갑등 준비가 필요하다.
비니쿤카, 무지개산!! 여러 볼거리중 강하게 기억에 남는 트레킹 코스다.- 강추하고 싶다.
비밀에 쌓인 공중도시 마추피추.
그 신비만큼 운해가 마추피추에 가득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면서 비밀스러움을 더해간다.


식사후 약간은 조용한 산브라스광장에서 멍때리기를 약 1시간정도 해본다.
자유여행의 진정한 맛이 느껴지는 순간이다...ㅎ

쿠스코!!
볼거리 많고, 도시전체가 관광지이고, 물가는 저렴한편이다
마추피추를 가기위해 거쳐가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자체볼거리도 상당히 많은 도시다.
치안은 상당히 양호한편이다.
산페드로 시장은 쿠스코 현지인들의 삶을 잠시 엿볼수있는 시간이었다.
가는곳마다 입장료를 받는데....이도시는 관광수입이 대부분일것같은 느낌이다.
특히 마추피추를 보려면 고비용이 드는 구조인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고, 앞으로도 찾을것 같다.
쿠스코 전체적인 느낌이 참 좋은도시다. 매력이 많은 동네이기도하다.
쿠스코는 해발 3,400m 에 위치해 있어서 처음오면 고산증에 시달리기 쉽다.
남미 여행지중에는 3,000m이상 되는곳을 다수 다녀야 하기때문에 한국에서 부터 고산증 약을 챙겨오기도하고
현지에서 구입하기도 하는데, 가격은 비슷하다.
raintree는 한국에서 약 15일치 약을 구입했고, 현지에서 10일치 약을 구입했는데 사용안했다.
천천히 적응해보니 무리없이 다닐만 하다. 경사길을 올라갈 때는 보통사람들 처럼 숨이 쉽게 차오른다.
청마님은 일행중 고산증에 가장 약한편인데, 그래도 고산증에 어느정도는 견디는것 같다.
좀 높은곳을 갈때마다, 한국에서 사간 약을 복용해보고, 현지약 소로체도 복용했는데,
차이점은 한국약을 복용하면 소변이 자주 마렵다는것이다. 여행시 화장실을 자주가야 하는건 치명적인 단점이 될수 있다.
현지약 소로체는 그런 증상이 없다한다. 고산증에 대한 효능은 한국약이나 소로체나 비슷비슷하다한다.
따라서 고산증을 현지에서 직접 겪어보고 문제가 있다싶을때 현지약 소로체를 구입해도 늦지않다.
일부러 한국에서 부터 구입해올 필요가 없다. 남미 대부분 어느곳에서나 소로체는 쉽게 구할수 있다.
그리고 일부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은 고산증약도 무용지물이라한다.
그럴때는 가능한 신속하게 해발고도가 낮은지역으로 이동해야한다.
현지 한인민박집 주인장의 고산증 대처방법은
물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걷고, 코카잎을 천천히 씹으면 많이 나아진다고 한다.
raintree는 코카잎을 몇번 씹었는데...
입안에 찌꺼기가 남아 개운치가 않아서 코카차를 마시거나 코카사탕을 입에 물곤 했다.
< 푸노 - 코파카바나 >
볼리비아호프 버스를 타고 페루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국경선.
아래 상징은 잉카인의 과학적인 농경방식을 나타내는 모라이에서 본 형상을 디자인해서 국경에 설치해 놓은것인데
페루라는 이미지가 바로 떠오른다.
1박 할 숙소에서 바라본 조망.
숙소가 참 예쁘다.직원들은 친절하고, 전망이 좋다. 다음날 사장님도 정말 친절하다는걸 확인했다.
단점은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잡혔다 안잡혔다 한다는것.

푸노의 우로스섬, 그리고 코파카바나.
호반의 도시답게 활기찬 모습이다.
우로스섬. 비록 관광지화 되었지만 구경할만하다. 전세계에서 가장높은 호수에 갈대로 땅을 만들고 집을짓고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코파카바나.
작은동네이면서 페루와는 느낌이 다른 볼리비아땅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동네다. 밤새 버스타고 오느라 누적된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호수안의 태양의 섬이라는 관광지가 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우리는 포기했다.
티티카카 호수는 호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바다라고 여겼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모습을 자랑한다.
서쪽으로는 페루, 동쪽으로는 볼리비아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태양의 아들딸인 망코 카팍(Manco Capac)과 마마 오크요(Mama Ocllo)가 강림함으로써 잉카 제국의 신화가 시작되었다는 곳이
바로 티티카카 호수이자 태양의 섬이다.
티티카카의 어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중 하나가 ‘모든 것이 시작되고 태어난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도 이 전설과 상통한다.
이렇듯 신비로운 티티카카 호수는 화창한 날에는 햇살에 빛나 반짝이는 푸른 물 위로 높은 하늘과 풍성한 흰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며,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그 색을 달리해 또 다른 모습으로 얼굴을 바꾼다.
호수로 가는 길에는 기념품이나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옷과 장신구를 파는 알록달록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태양빛이 넘 강해서 호수가 은빛으로 변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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