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1) 송준호와 '석주길' 설악산은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갖고 있다.
솜다리꽃.박새풀.둥글레.함박꽃.전나무를 비롯해 하얀 껍질에 사연을 적어보내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자작나무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가 하면 설악골.용소골.토막골.곰골.잦은 바위골 등의 숱한 골짜기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용아장성.공룡능선.화채봉 능선.서북릉.천화대 등의 바위능선(암릉)과
대청.중청봉을 휘감는 바람과 구름, 그리고 동해까지 거느리고 있다.
거기에 '설악시(詩)'와 '설악가(歌)'까지 지니고 있다.
그 설악의 노래는 슬픈 노래다. 아니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래다.
'너와 나 다정하게 걷던 계곡길, 저 높은 봉우리에 폭풍우 칠 적에…' 설악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노래한
'설악가' 속에 나오는 산(山)친구이면서 사랑하는 사이이기도 한 '그녀'는 가을 설악산에서 조난당해 세상을 뜨게 된다.
그녀를 설악에 묻고 그리움을 삭이지 못해 매번 설악산에 되돌아와 부르고 또 부른 노래가 '설악가'다. '
굽이져 흰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요. 꿈 같던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외설악 초입에 있는 노루목 근처 산자락에 가면
지금은 호텔과 여관 등 숙박시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사자(死者)의 마을'이 있다.
설악을 사랑하다 결국 설악의 품에 영원히 안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곳에는 1969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한국산악회 소속 대원 10명의 무덤(산악인들은 '십동지묘'라 부른다)을 비롯해
설악산에서 숨진 여러 산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국토의 7할이 산인 산악국가로
산을 신앙으로 숭배하던 배달겨레의 유일한 '산악인 묘지'인 셈이다.
여기에는 이름없는 산사람들의 초라한 무덤들이 자그마한 동산을 이루고 있다.
상석은 고사하고 비석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무덤의 주인공들은
벚꽃처럼 활짝 필 젊은 나이에 산에서 운명을 달리한 산사람들이다.
이 중에는 엄홍석과 신현주라는 두 남녀의 무덤이 있다.
연인 사이로 여러 차례 설악산을 함께 올랐던 두 사람은 67년 가을 어느 날 '설악가'의 가사 그대로
설악에서 등반사고로 함께 세상을 떴다. 이들과 같은 요델산악회의 회원이었던 송준호는 엄홍석과는 피를 함께 나눈다는
자일파트너(암벽등반 동료)인 동시에 의형제 사이였다. 그런 인연으로 송준호는 엄홍석과 신현주의 무덤을 자주 찾았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로지르는 공룡능선은 설악의 주릉이다.
이 공룡릉에서 흘러내린 설악골과 잦은 바위골 사이를 천화대라고 하는 험준한 바위능선이 치밀어 올라 있다.
천화대는 여러 갈래의 작은 능선(지릉)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 설악골에서 왕관봉과 범봉 사이에 있는 성곽처럼 생긴
바위능선 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송준호는 68년 7월 이 바위능선을 맨처음 오르는 산악인이 된다.
산악계에서는 등산코스를 개척한 초등(初登) 산악인에게 코스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명명(命名)권'을 주는 것이 관례다.
송준호는 그 바위능선에 '석주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형제 엄홍석과 그의 연인 신현주의 이름 끝자인 '석'과 '주'를 따와 붙인 것이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석주길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의 이마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다.
그리하여 '석주길'이라는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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